미술가들에게 달아준 날개 유화물감이 르네상스

 유화 물감이 보급되기 전 화가들은 주로 나무판에 템펠러로 그림을 그렸다. 템펠라는 매우 오래된 회화 기법으로 광석이나 식물에서 채취해 분말로 만든 안료를 주로 노른자로 접어 그린 그림이다. 템펠러 기법은 건조가 빠르고 건조한 뒤 변질되지 않아 보존성이 뛰어나며 싱싱한 색채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러나 템펠라는 건조가 빨라 부드러운 붓의 움직임을 통한 세부 묘사에 어려움이 있고 명암 처리나 미묘한 색채 표현에 단점이 있다. 템펠러의 가장 큰 단점은 수정이 어렵다는 점이다. 유화 물감은 템펠라의 이런 단점을 보완해 주었고 유화가 보편화하기 시작한 플랑드르 지역(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의 화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훨씬 섬세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서양미술사는 지리적으로 알프스 남쪽의 이탈리아와 알프스 이북 지역으로 나뉜다. 알프스 이북의 플랑드르에서 사용된 유화 물감은 여러 미술가를 통해 이탈리아로 전파됐다. 유럽의 15세기는 지역에 따라 중세와 르네상스가 혼재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르네상스가 꽃피웠지만 알프스 너머 북쪽 지역에서는 여전히 중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가장 큰 차이는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과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이다. 흔히 중세는 신과 교회 중심, 르네상스를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와 연결시킨다. 이런 단순한 관계를 맺기엔 많은 오류가 숨어 있다. 중세와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에는 신이 있었다. 결정적인 차이는 신과 신이 창조한 세계와 자연의 질서에 어떻게 접근하고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신과 세계를 사유하고 해석할 수 있는 권위는 교회에만 있었다. 르네상스의 도래로 그 채널은 다양해졌다. 논리적 인과관계에 기초한 이성적 판단, 실험과 관찰, 논리적 분석을 통해 지식이 습득되었다.
유화 기법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던 플랑드르 작가들은 마치 거울이 세상을 비추듯 눈에 보이는 대상을 엄청난 섬세함으로 그림으로 옮겼다. 한편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분석적이고 과학적이며 이성적인 탐구를 통해 세계를 파악했다.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의 근저에 존재하는 보다 근본적인 규칙과 법칙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수학적으로 계산된 원근법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서양미술사의 저자 E. H. 곰브리히는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업적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둘째, 둘째, 평면에 공간표현을 가능하게 한 원근법, 둘째, 완벽한 인체묘사를 가능하게 한 해부학, 그리고 마지막 셋째, 고대 건축언어의 부활을 꼽고 있다.눈으로 본 세상을 그대로 닮아 그림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마주한 난관은 어색함과 딱딱함이었다. 아무리 섬세하게 인체의 움직임을 표현해도 아무리 정확하게 원근법적 공간을 구현해도 충분한 생동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유물감이다. 경계를 흐리게 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프마토 기법이나 라파엘로가 그린 성모 마리아의 우아함이 가능했던 것은 유화 물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탁월한 발상이 있어도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상상력과 문제의식이 없다면 그 기술 또한 무용지물이다. 기술이 없는 미술은 존재할 수 없고 예술적 상상력이 없는 기술은 사용법에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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