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321 슈퍼 프렐론 이스라엘군 대형 헬기 계보의 시작... [이스라엘 공군 항공기 운영사]

 

아에로스파셜 슈퍼 프렐론은 미국 시코르스키사의 도움으로 로터시스템 설계를, 기어박스와 트랜스미션은 피아트사의 도움으로 개발됐다. 그 결과 서유럽권에서 대량 양산된 베스트셀러 헬기가 됐다.

엔진 3개를 갖추어 최대속도 시속 248KM 작전 반경 815KM인 이 대형 헬기는, 최대 이륙 중량 13톤, 28명의 병력 또는 화물 5톤(내외 적재)의 수송이 가능하다.



첫 비행은 1963년 5월 28일에 이뤄졌으며 양산은 2년 후에 시작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됐으며 이 기체를 운영하는 양국이 대립하던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엑조세 미사일로 무장한 이라크군 슈퍼 프론호가 이란 고속정 1척 이상을 격침시켰다.


이스라엘 공군은 중량급 수송 능력이 필요해 1965년 12대를 주문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이스라엘과 프랑스의 관계는 매우 친밀했기 때문에 프랑스 헬기의 선택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965년 초 이스라엘 공군 대표단이 새로 선택한 이 헬기에 대한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으며 이스라엘군을 위한 슈퍼프레론의 첫 인도 기체는 1966년 4월 현지에 도착해 제114비행대 소속으로 편성됐다.

1956년 해대된 훈련비행대를 재창설한 114비행대는 1966년 1월 하임 나브 소령이 지휘했다. 그는 시코르스키 사에서 S-58 헬기 조종사를 지휘했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 돌입할 때까지 이스라엘군이 인수한 슈퍼 프론트는 불과 4대에 그쳤다.

개전 첫날인 6월 5일 슈퍼플랑 헬기는 이스라엘군이 작전 중인 시나이 전선에서 응급구호 임무를 수행했고, 6월 7일에는 3대의 슈퍼플랑 헬기가 S-58 헬기와 함께 시나이 반도 최남단의 전략요충 샤름 엘셰이크에서 지상군 강습 작전을 벌였다.

시코르스키 S-58 헬리콥터.



6월 8일 발생한 최악의 사고인 미군 정보수집함 USS 리버티 오인 공격사건 이후 이스라엘 공군의 슈퍼 프레론 헬기가 미군 선박으로 날아가 구호임무를 수행하려 했으나 성난 미군 장병들의 거부로 구호임무는 무산됐다.

전쟁 막바지인 6월 10일에는 시리아 골란 고원에서 이스라엘 지상군을 위해 물자를 운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이 끝났을 때 슈퍼 프레롱헬기는 41소티의 출격기록을 세웠다.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 헬리콥터 인도가 재개되었고 주문한 8대가 차례로 도착했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스라엘이 새로 점령한 영토에 주변 아랍국들이 동의하지 않아 전선은 다시 무장충돌이 재개됐다.
이른바 소모 전쟁(the war of attrition)의 시작이었다. 이 시기 슈퍼프레론은 이스라엘군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1967년 10월 21일 이집트의 대함미사일 스틱스에 이스라엘 해군 구축함 에일라트가 격침되자 슈퍼플레롱 헬기는 구조 임무에 투입돼 수병을 구조했다. 이 헬기의 수상 부유 능력 덕분에 지중해 해상을 표류하던 이스라엘 수병 23명을 구조할 수 있었다.
수상 부유 능력을 갖춘 슈퍼 프레롱. 프랑스 해군 소속의 기체
1968년 10월 31일 슈퍼플랑 헬기는 이집트 내륙의 종심 침투작전에 참가해 나스함디 인근 이집트 댐과 수력발전소 키나에 위치한 교량 타격작전을 벌였다.
4대의 슈퍼 프레론 헬기에 탑승한 이스라엘 공수대원들은 이집트 내륙 약 700 지점에 있는 이들 목표를 향해 침입했고 2대는 전력 설비를 접수했으며 나머지 2대는 댐과 교량에 접근해 폭탄을 설치, 파괴했다.
이 작전으로 이스라엘 작전부대는 인명 피해 없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에도 약 2년간 슈퍼 플레롱 헬기는 이와 비슷한 특수한 임무를 무수히 수행했다.

1968년 12월 26일 아테네에서 이스라엘 민간항공사 ELAL의 B707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아 승객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스라엘은 이들 테러리스트를 지원한 레바논 정부에 보복하기로 결심했다.
1968년 12월 28일 밤 3대의 슈퍼플랭에 탑승했던 이스라엘 특수부대원들이 베이루트 공항에 강습해 공항에 흩어져 있던 아랍 국적 민항기 13대를 파괴하고 이스라엘로 복귀했다.
이 사건은 그 파문이 일면서 프랑스 국내의 문제가 되었다. 식민지 전역을 대상으로 프랑스제 항공기가 동원된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프랑스 내 여론을 악화시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결국 이스라엘은 슈퍼프레론을 추가 구매하려던 계획을 파기하고 미국산 CH-53 스타리안 헬기로 갈아타기로 결정했다.
1969년 12월 26일 이스라엘군은 "루스터 53"으로 알려진 대담한 급습작전을 실시했다.
슈퍼프레론과 새로 도입한 CH-53 헬기를 동원한 이 작전에서 슈퍼프레론 3대에 탑승한 이스라엘 공수대원들은 라스-아랍에서 운영 중인 소련제 P-12 레이더를 탈취해 본국으로 귀환했다.
공수대원이 이집트군 기지를 제압하자 홍해 건너편에서 CH53 헬기 2대를 호출해 레이더를 싣고 퇴각한 것이다. 》
1970년 1월 22일에는 수에즈 만의 이집트군 거점 '샤드완' 섬에 대한 점령 작전을 위해 슈퍼 프레론 헬기가 이스라엘 공수대원을 실어 날랐다('로도스' 작전).


1973년 발발한 욤키푸르 전쟁에서는 이미 CH-53 헬기가 주력이 됐음에도 슈퍼 프레론 헬기는 수송과 응급구호 임무에 참여해 전방위로 활약했다.
10월 16일의 수에즈 운하 도하 작전, 헬몬산의 관측소 탈환전( 「디저트」작전)에도 참가했다. 헤르몽산 작전에는 슈퍼 프레론과 CH-53 헬기가 600명의 이스라엘군을 수송했다.
염키푸르 전쟁이 끝난 뒤 이스라엘 공군은 슈퍼 프레롱 엔진을 프랑스제에서 미국산 GET 58-16으로 교체했다.
진동과 소음이 줄어 정숙성이 향상된 이 헬기는 1978년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때 국빈 전용으로 사용됐다. 이후 슈퍼 프레론 헬기는 1982년 6월 레바논 작전 갈릴리의 평화에도 참가했다.
1991년 슈퍼 프레롱 헬기는 공식 퇴역해 6대가 하채림의 이스라엘 공군박물관에 전시 중이며, 그중 1대는 비행이 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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